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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의 마지막 자투리 날 소리새/박종흔 겨울을 마무리하는 이월의 마지막 자투리 날 항상 그러하듯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거리로 나선다. 도시의 어둠을 밝히는 빛을 발하고 촘촘히 들어선 건물마다 밝은 조명과 네온사인이 번쩍인다. 냉기가 남아 있는 시장 골목은 한산하다. 아직 미..
신병 훈련소 소리새/박종흔 남자들은 대부분 신병 훈련소에 입소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사회에서 잘났든 못났든, 부자든 부자가 아니든, 미남이든 추남이든 그것은 훈련소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훈련소에서 지급되는 보급품은 누구에게나 같다. 훈병 번호가 새겨진 명찰을 ..
나는 너, 너는 나이며 우리이다. 소리새/박종흔 바람이 차다. 오랜 목마름과 잠시의 목축임. 해갈되기엔 역부족인 겨울비가 꼬리를 거두고 잔뜩 독이 오른 대지는 타는 목마름을 호소한다. 기대의 결과는 갈급한 마음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오래도록 홀대받은 민초들의 가슴을 쥐어짠다. "..
겨울비와 봄비 소리새/박종흔 어둠 속에서 가는 빗줄기로 내리기 시작한 겨울비는 하룻밤을 내리며 이제 제법 굵은 봄비로 이어진다. 때맞춰 계절을 갈아타는 절묘한 자연의 타이밍에 감탄한다. 출근길이 유난히 막혀서 짜증이 나지만 마음을 열고 차창 밖을 보니 기분이 풀린다. 단비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소리새/박종흔 가뭄이 이어질 때는 비가 내리기 원하지만 지루한 장마 때는 비가 그치고 쾌청한 날을 기다린다. 빗나간 사랑도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들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중 잣대를 들고 다니다 필요한 타이밍에 자신에게 이로운 잣대를 꺼내 놓는다. 똑같은 것..
괴테를 배우며 소리새/박종흔 학창 시절에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다. 이루지 못할 사랑 때문에 가슴이 메마르고 결국에는 젊은 그의 인생이 파멸로 종결되고 마는 한 청년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베르테르"는 약혼자가 있는 "로테"를 사랑하게 되며 그의 인생..
먼 여행 소리새/박종흔 먼 여행을 떠난 지 한 해가 지난다. 탐심만 가득해서 시작한 고행의 길이 이렇듯 깊게 골이 파이도록 매년 찾아오는 사월의 잔인함처럼 폐부를 짓눌러 온다. 소년은 바닷가서 주운 소라껍데기를 귀에 대고 세상 이야기를 듣는다.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뱃고동 소..
외눈박이 태양이 소리새/박종흔 “태양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강아지 이름이다. 외눈박이 강아지를 만난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태양이"는 개인이 하는 유기견 보호소 움막의 많은 강아지 가운데 내가 가장 예뻐하는 강아지이다. 작년 무더운 더위에 혀를 길게 늘어뜨리고 헉헉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