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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나의 이야기(창작~수필·칼럼) 2009. 2. 5. 22:20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소리새/박종흔 가뭄이 이어질 때는 비가 내리기 원하지만 지루한 장마 때는 비가 그치고 쾌청한 날을 기다린다. 빗나간 사랑도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들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중 잣대를 들고 다니다 필요한 타이밍에 자신에게 이로운 잣대를 꺼내 놓는다. 똑같은 것이라도 타인에게는 불리한 잣대를 들이대고 정죄한다. 요즘 사회는 이런 일들이 대세로 자리를 잡았다. 마음의 상실은 물론 거짓과 권모술수가 판을 치고 금수만도 못한 사람들이 악행을 저지르는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렇게 회생 불능으로 타락한 상실된 마음은 과연 누구 탓일까? 바로 내 탓이며 우리 탓이다. 누구를 탓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다. 자동차 뒤에 “붕어 비슷한 그림”과 “내 탓이오!” 하는 스티커가 붙은 차량을 본다. 그런 자동차를 볼 때는 양보가 절로 마음에서 우러러 나온다. 비록 말은 하지 않아도 양심의 맑은 색채가 보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실종 되었던 여대생과 다른 실종 사건이 범인의 검거로 해결되었다. 모두 참혹한 죽음으로 차갑게 얼어붙은 땅속에서 발견되었다. 자신의 꿈과 삶을 타인에 의해 무참히 빼앗긴 사람들. 범인은 여전히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사람들 앞에서는 반성하는 말을 하지만 이내 또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끔찍한 범죄를 그렇게 저지르고도 보통 때처럼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잔다고 한다. 보통 말하는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다른 사람의 아픔과 슬픔을 판단하지 못하고 살인을 저질러도 자신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공격성을 억제하는 분비물인 “세로토닌”의 생성이 부족해 사소한 일에도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아주 강한 공격성을 보인다. 그러기에 보통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범죄를 저지를 때의 그의 모습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전혀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범인에게 희생당한 피해자 중에는 평범하게 살던 정숙한 부인도 포함되어 있다. 새벽 기도하러 가다가 범인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을까? 항거불능인 상태에서 두려움에 떨며 자신을 구해 달라고 그의 믿는 신에게 구원을 요청했으리라 짐작한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럴 때 사람들은 또 한 번 불리한 이중 잣대를 꺼내 든다. “신이 어디 있느냐고. 그러면 왜 구원을 해주지 않느냐고.” “이 위급한 상황에서 저를 구해주세요! 너무 두렵고 떨립니다. 빨리 제 손을 잡아 이 구렁텅이에서 저를 구원해 주세요!” 침묵의 시간이 흐른다. 그리고 희망이 사라질 때 마지막 기도가 이어진다. ....................... “저를 구원하여 주세요! 그러나 비록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은 변치 않습니다.” 이것은 당시 상황을 추측한 내 생각이다. 사람들은 고난을 받을 때 그분을 찾다가 이내 원망을 한다고 한다. “내가 그리 힘들고 고통에 몸부림칠 때 당신은 내 곁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걸은 백사장 모래밭에는 내 발자국만 찍혀 있었습니다. 항상 나와 함께 한다고 하더니, 그때 당신은 어디 있었나요?” 그러자 그분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가 너무 힘들도 아파해서 내가 너를 업고 그 길을 걸었단다. 그 발자국은 너를 업고 걸은 내 발자국이란다.” 살아가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닥칠 때 위 예화가 도움이 되면 좋겠다. 우리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도덕과 양심은 경제 우선이라는 허구에 가려진 채 눈을 가리고 자신의 영혼을 판다. 심각한 도덕적 불감증이 마음에서 온몸으로 번지고 있지만 그것을 치유하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배가 아플 때 빨간 소독약으로 배꼽 주위에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처럼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땜질 식 처방으로만 일관한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는 상실된 마음이 아무 데나 굴러다닌다. 통속적인 수식어로 치장하면서 고무줄 효과를 되풀이한다. 당겼다가 놓으면 원래 그 위치로 돌아가는 고무줄. 이제는 그 고무줄을 잘라버리고 붕어 모양의 그림과 내 탓이오! 이런 문구를 가슴에 새기면 어떨까? 그러면 좀 더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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