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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눈박이 태양이
    나의 이야기(창작~수필·칼럼) 2009. 1. 8. 14:34
    
    
        외눈박이 태양이 소리새/박종흔 “태양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강아지 이름이다. 외눈박이 강아지를 만난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태양이"는 개인이 하는 유기견 보호소 움막의 많은 강아지 가운데 내가 가장 예뻐하는 강아지이다. 작년 무더운 더위에 혀를 길게 늘어뜨리고 헉헉거리는 가엾은 강아지들. 외눈박이 잉코의 털은 길게 늘어져 항상 지저분하게 엉켜 있었고 한쪽 눈은 메추리 알 두 개만큼 부풀어 있었다. 자세히 봤더니 그 부푼 눈동자는 회색으로 변하여 눈이 멀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심하게 얻어맞아서 그런 듯했다. 사람이 악해지면 짐승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다. 그러기에 사람만큼 무서운 동물도 없다고 한다. 짐승도 싸움하다가 배를 보이고 누우면 공격하지 않는데 죄 없는 강아지를 발로 차서 눈을 멀게 하다니 "양심"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는 듯하다.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동물을 학대하는 얘기는 가슴을 아프게 한다. 공사용 공구로 고양이 머리에 못을 관통시키고 고양이 척추에도 못을 박아서 하반신을 마비시키는 일이 많아졌다. 한 지역에서 수십 마리 고양이에게 못된 짓을 했다. 그들은 무슨 악한 게임을 하듯 고통을 즐기며 그 짓을 하는 것 같다. 어쩌면 사람의 마음이 이리 강퍅한지 안타깝다. 작년에 우연히 알게 된 강아지를 키우는 임시 움막에는 주인에게 버림받은 40마리의 애완견이 있었다. 움막 주변은 대소변의 오물이 넘쳐 역한 냄새를 내뿜었다. 처음 목격한 주인 같아 보이는 아줌마는 중년의 문턱을 넘은 듯 보였다. 뚱뚱한 몸매에 핏기없는 얼굴, 눈은 좀 날카로워 보였다. 초면인 사람은 말을 붙이기 어려운 타입이었다. 강아지들 몰골을 보면 목욕을 자주 시키는 것은 아닌 듯 보였다. 분명 남들이 키우던 애완견들 같은데 데려다 키워서 식당에 파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불쌍한 마음에 거둬서 돌봐주는 것인지 내 판단으로는 도통 종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식용으로 팔기에는 강아지들 모두 체구가 너무 작았다. 수학적으로 계산해도 전혀 이해타산이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 놓고 "저 강아지들 키워서 팔려고 그러나요?” 이렇게 물을 수 없는 노릇이라 안타까운 마음에 한동안 지켜만 봤다. 가끔 그곳을 지날 때 주려고 커다란 소시지를 몇 개 사서 고르게 잘라 봉투에 넣는다. 강아지 숫자가 많으니 서너 개씩 주려면 배춧잎 한 장 정도는 투자해야 한다. 리치 담뱃값이 2300원이니 애연가들 담배 네 갑을 버려야 한다. 돈이 아까운 생각이 들 때면 배고픈 강아지들을 생각한다. 이제는 몇 번 먹을 것을 줬다고 자동차 엔진 소리만 듣고도 알아챈다. 서로 저부터 달라고 목청껏 짖으며 반가워 난리들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 틈나는 대로 먹을 것을 모아다가 주면서도 강아지들이 살찌면 식당에 파는 것은 아닌지 은근히 걱정되었다. 배고파 애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모른 체하기도 어렵고. 그래, 죽을 때 죽더라도 확률은 절반씩이지만 배는 채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일단 간식거리를 챙겨 주기로 했다. 강아지 사료 큰 포대를 사서 문안으로 넣고 사료 포대에 "아주머니 강아지 사료입니다." 라는 메모를 남겼다. 제발 그분이 마음씨 고운 분이기를 바라면서. 그다음 주에는 단골 정육점 주인에게 사정해서 돼지 지방을 한 자루 샀다. 느끼한 냄새를 맡으며 한겨울에 창문을 모두 열어놓고 끓였다. 그리고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기쁜 마음으로 강아지에게 달려간다. 절반의 확률이 좋은 쪽으로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반신반의하던 늦가을 움막 위 감나무에도 감이 주렁주렁 열렸다. 그 아주머니가 장대로 감 가지를 꺾으며 감을 딴다. 기회다 싶어서 "아주머니 감 따 드릴까요?” 하고 말을 걸었다. 아주머니는 괜찮다며 하던 일을 계속한다. 잠시 후 그 아주머니는 감이 달린 감나무 가지를 나에게 건넨다. 못생겼지만 맛있으니 삭혀 먹으라고 한다. 보기보다는 인정미가 있어 다행이다. 말문을 트니 자연스레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자신이 어떻게 살다가 왜 이렇게 개를 키워 주는지 인생 말년에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는지를 말해주었다. 그분은 버려진 유기견을 긍휼히 여겨 돌봐주는 것이다. 자신이 매우 아프지만 그래도 강아지들을 생각하면 아픈 몸을 이끌고 먹을 것을 챙겨주러 온다고 한다. 몸이 너무 아파 "항암제"를 맞고 누워 있다가도 이것들을 생각하면 불쌍해서 힘을 내어 억지로 일어나서 나온다고 하면서 말끝을 흐린다. "항암제" 그 얘기를 하는 것으로 봐서는 "암" 인 것 같다. 그래서 얼굴이 창백하고 말이 없었나 보다. 좋은 일을 하는 분이 고통을 받는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판기 커피를 한잔 빼서 그분께 드리자 "재가 "태양이"에요" 하면서 나에게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많은 강아지 중에 외눈박이를 예뻐하는 것을 어찌 알았을까? 그분은 내가 강아지들을 대하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았나 보다.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전파되나 보다. 할 수만 있다면 그분을 위해서 작은 보탬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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