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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 연가
    나의 이야기(창작~수필·칼럼) 2020. 1. 19. 17:18
    
    
        겨울 연가 소리새/박종흔 나에겐 딸이 있다. 그것도 무남독녀 외동딸이. 환갑이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마음은 아직 청춘으로 살고 있는 나. 남자란 존재는 본디 철부지라고 하지만 아마 난 평생 그 신세로 살 것 같다. 그러나 남에게 해를 끼치는 타입은 아니니 나름 괜찮은 철부지로. 세월은 흘러 나 역시 딸을 출가시켜야 하니 요즘 마음이 심란하다. 특히 짝은 예전부터 신경이 예민해지고 자주 눈물을 보인다. 친구 자녀들 결혼식을 많이 봐서 결혼을 앞둔 부모의 마음을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결혼 날짜가 다가올수록 초조해진다. 딸은 대학교 4년과, 교사로 3년을 우리와 떨어져서 생활했으니 혼자의 생활이 자유롭고 익숙한 듯하다. 방학을 이용해서 1월 중순 토요일에 날짜를 잡았다고 통보한다. 그냥 진행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결혼식도 주례가 없는, 자기들끼리 진행하는 것으로 하겠다고 하니 뭐 그냥 따를 수밖에. 결혼식을 보름 앞둔 어느 날 예복을 세트로 사야 한다고 딸과 짝이 백화점에 가자고 한다. 양복 많은데 왜 다시 사냐고 했지만, 꼭 사야 한다는 성화에 못 이겨 신도시 백화점으로 향했다. 겨울인데도 백화점 안은 따뜻했다. 여기저기서 직원들이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한다. 양복 코너에 들러서 셔츠와 양복을 치수에 맞게 입어보니 몸에 달라붙고 마음에 든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150만 원이란다. “헉! 뭔 옷이 그렇게 비싸?” 나는 솔직히 30만 원으로 생각했는데... 다른 매장도 가보자고 하며 옆으로 향하는 모녀. 옷을 입고 벗기가 귀찮아서 그냥 샀으면 했지만 여자들 마음은 아니겠지. 옆 매장 옷을 셔츠와 타이까지 세트로 입어보니 이쪽이 더 어울린다고 한다. 가격은 저번 매장과 똑같다. 그냥 입은 양복으로 하겠다고 결정하니, 이제 넥타이와 셔츠를 고른다. “비싼 양복 샀으니 셔츠는 서비스로 주는 것 아닌가요?” 뜬금없는 내 말에 순간 매장 남자 직원들의 표정이 굳어진다. 짝이 내 옆구리를 꼬집으며 하는 말이 “미쳤어? 셔츠 하나에 30만 원인데 무슨 소리야?” “뭔 얘기야? 1~2 만원이면 되지” 내가 목소리가 큰 편이라 내 얘기를 듣고 매장 직원들이 키득거린다. 세상 물정 참 모르는 나. 그 매장서는 양복과 넥타이만 사고, 다른 매장에 가서 셔츠와 구두를 샀다. 합이 200 정도. 평소 아끼기 대장인 딸이 그 금액을 자기 카드로 결제한다. 30년 키워줬으니 아무 말 말고 그냥 받으라는 아내. 보름의 시간이 훌쩍 지나고 어제 결혼식을 올렸다. 짝은 하객들에게 인사도 못하고 옆으로 빠져 훌쩍대며 눈물을 훔친다. 신부 입장이라는 사회자의 멘트가 나오자 직원이 알려준 대로, 왼손에 딸의 오른손을 얹고 천천히 걸어가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이를 악물었다. 매끄럽게 식순대로 진행되고 이제 내 차례가 다가온다. 내 순서는 축복기도와 축시 낭송. 두 개 합쳐서 3분으로 아주 짧게 시간을 잡았다. 나는 결혼식을 많이 봐서 안 울겠지 했는데 막상 마이크를 잡으니 울컥~ 목소리가 떨리며 잠긴다. “이러면 안 되는데.. ” 속으로 마음을 다잡으며 기도를 이어갔지만 절반은 울먹이며 한 듯하다. 바로 이어서 축시 낭송. 경음악이 흐르고 그동안 친구 자녀들을 위해 많이 낭송했던 시를 낭송한다. 나에게 오신 당신 소리새/박종흔 거리엔 무수히 많은 길이 있지만 내가 가야 할 길은 오직 한 길 그 길을 가야 그댈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상의 아름다운 꽃도 그대 모습만큼 빛나지 않으며 치명적인 꽃향기도 그대 마음의 향기를 따를 수 없습니다 밤하늘에 별이 없다면 검은 하늘엔 무거운 침묵만 흐르겠죠 밤하늘 아름답게 수놓는 별처럼 나에게 오신 당신 그댄 내게 별 같은 존재입니다. 낭송을 끝낸 후 하객들에게 인사하고 신랑과 신부를 포옹해주며 격려하는데 또 눈물, 눈물이... 이제 홀가분하다. 내가 앞으로 사는 동안 먼발치서 바라보며 격려해주고 지켜줘야지. 모든 아빠들이 그렇게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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