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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소공포증
    나의 이야기(창작~수필·칼럼) 2018. 12. 10. 10:02
    
    고소공포증
                     소리새/박종흔
    신혼여행 때 제주도 왕복으로 단 한 번 탔던 비행기.
    그 비행기를 드디어 29년 만에 탔다.
    나는 고소공포증이 심해서 바이킹도 못 타는데
    비행기는 감히 생각하기도 싫었다.
    수많은 세월 하늘을 쳐다보며
    “나는 절대 비행기를 타지 않겠노라.”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 가는 기분이 된 기분.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공항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1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딸이 사준 캐리어에 옷가지와 세면도구를 가득 채우고
    작은 가방도 둘러맸다.
    나중에 헤아려보니 가져간 옷에서 사용한 건 10% 정도이다.
    (준비성이 너무 철저한 내 성격.
    예전에 소백산 산행에서 낙오한 경험이 있다.
    그 이유는 옷을 너무 많이 넣어 배낭이 무거워서이다)
    일행 일부를 만나 공항버스로 1시간 반 정도 달려 
    제 2공항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 하나둘 모여서 일행들이 다 집결했다.
    내 머릿속은 비행기를 어떻게 타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내가 비행기를 타면 그 비행기가 추락할 것 같은 느낌이니
    당연히 불안해서이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면세점에서 물건을 사서 캐리어에 채웠다.
    자리를 찾아 앉으며 탑승 인원을 헤아리니 대충 350명은 되는 듯했다.
    이 많은 사람을 싣고 비행기가 뜰까 내심 불안했지만
    기왕 탑승했으니 가는 수밖에.
    일행들이 낄낄거리며 힘내라고 응원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안대를 쓰고 눈을 감았다.
    머리카락이 서고 소름이 끼치는 기분.
    엔진 소음이 들리고 동체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눈을 감은 채 옆 사람에게 묻는다.
    “활주로 떴어?”
    “아니, 아직 이동 중이야.”
    조금 지난 후에 또 묻는다.
    “이륙했어?”
    “ 킥킥~ 아니, 아직 이륙 안 했어.”
    엔진 소음이 더 크게 들리고 흔들림이 느껴진다.
    “지금 뜨는 거야?”
    “응, 지금 활주로 달리고 있어.”
    안대 때문에 캄캄한데도 눈을 더 질끈 감는다.
    주먹을 너무 세게 쥐어서 부르르 떨리고 손가락에 경련이 일어난다.
    눈앞은 캄캄한데 머릿속은 하얗다.
    조금 후에 친구가 말한다.
    “비행기 떴어, 이제 안대 벗어도 돼.”
    “싫어! 그냥 갈 거야.”
    귀밑에 붙인 멀미 반창고 때문인지 비행기 멀미는 없다.
    한참 후에 안대를 벗고 창밖을 보니 비행기가 구름 위를 나는데 
    속도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간단한 기내식을 먹고, 다시 안대를 하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자다가 죽으면 아픈 걸 모르겠지.”
    혹시나 해서 비행기가 잘못되면 일 처리 하라고
    내 방 서랍 하나를 비우고 내 인감도장과 신분증, 기타 증명 서류와 
    필요할 때 찾을 수 있게 비번도 적어 놨다.
    “내가 죽으면 그거 찾아서 쓰고, 항공사에서 보험금도 나올 테니.”
    졸다 자기를 반복하며 3시간을 날아서 공항에 착륙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조금 후에 약간의 진동을 느끼며 착륙에 성공했다.
    “휴! 살았다.”
    일행이 축하한다고 키득거리며 난리다.
    이제 비행기 타는 거 성공했으니 자주 여행 가도 되겠다고 낄낄댄다.
    나의 미소도 잠시뿐.
    일행들은 검사대를 다 통과했는데 내가 걸렸다.
    지문을 찍는데 계속 붉은 불이 나온다.
    공안이 나와서 내 손을 잡고 이리저리 찍어보지만 연신 불합격이다.
    잠시 후 그 공안이 나를 데리고 앞에 있는 보호소로 데려간다.
    공안 두 명의 감시를 받으며 20여 분을 대기했다.
    “29년 만의 해외여행인데 혹시 퇴짜인가?”
    공안이 한참 통화하더니 나에게 손짓으로 나가란다.
    “가도 돼?”
    나도 손짓으로 수화하니 가라고 표시한다.
    고맙다고 꾸벅 인사하고 일행한테 달려갔다.
    왜 지문이 안 나왔냐고 묻기에
    지인에게 국산 땅콩을 한 자루 샀는데, 맨손으로 땅콩 껍데기를 다 까서 
    그런 것 같다고 하니, 또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다.
    자칭 대국이라는 중국.
    중국은 현지 가이드만 쓰라고 한다.
    중국에 사는 한인 동포 가이드가 나와서 우리를 맞는다.
    대기한 버스에 오르자 자신을 소개하며 일행과 소통한다.
    마이크를 잡고 항상 뒤를 보며 얘기하는데 인상이 꼭 조폭 느낌이다.
    말할 때마다 연신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는데
    습관인지 신경성 질병인지, 4박 5일간 계속 힘들게 그 모습을 봐야 했다.
    그래도 마음은 착해 보여서 다행.
    호텔에 여장을 풀고 뷔페서 저녁 식사를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내가 먹을 게 하나도 없다.
    가뜩이나 비위가 약한데 모든 음식에 기름과 향신료 범벅이다.
    버섯류가 있어서 한 젓가락 입에 넣었다가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고 난감하다.
    일행 눈치를 보며 씹지도 않고 할 수 없이 꿀꺽 삼키니
    미끈한 느낌과 동시에 진한 향신료 냄새가 코를 찌른다.
    “아! 이건 아닌데.”
    5일간 이래야 한다니 정말 걱정이다.
    생각해보니 5일간 일행이 가져온 작은 컵라면 4개로 끼니를 때운 것 같다.
    나머지 식사는 고추장 조금 얻어서 밥알에 대충 발라서 먹은 기억이다.
    혹시 외국 여행을 갈 땐 꼭 밑반찬을 챙겨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다.
    한 군데 관광이 끝나고 다음 목적지로 가려면 4시간 이상을 버스로 간다.
    땅덩이가 무척 크다는 걸 실감한다.
    장자제는 지방인데도 가는 곳마다 아파트와 빌딩 공사가 대규모로 이뤄진다. 
    요즘 왜 미국이 중국을 때리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땅도 크고 인구도 많고 기술력도 발전하니 추월당할 위기감이 있겠지.
    가는 곳마다 음식이 맞지 않는다.
    천문산서 내려오니 매점에 호떡 비슷한 게 보인다.
    “이거 얼마예요?” 물으니
    “천원, 천원.” 대답한다.
    호떡으로 요기나 할까 해서 세 개 주문하며 삼천 원을 주니 
    육천 원 달라고 한다.
    아~ 예전에 일행에게 들었는데
    천 원 하면 천 원 주면 되고, “천원, 천원.” 하면 이천 원이라고 했지.
    그걸 깜빡 잊었다.
    아니~ 호떡 하나가 이천 원이라니, 한국보다 비싸다.
    한입 씹으니 느낌도 맛도 이상하다.
    넣은 내용물이 설탕이 아니라 무슨 젤리 비슷한데 맛이 영 아니다.
    친구도 못 먹겠다고 하며 버렸다.
    결국 바가지만 쓰고 그날도 배를 곯았다.
    버스로 매일 8시간 이동하며 4박 5일 장자제 여행을 마쳤다.
    귀국하러 공항으로 가면서 다짐했다.
    “내가 살아서 집에 가면 다신 중국엔 가지 않겠다고.”
    가장 큰 이유는 음식이 맞지 않아서이다.
    한국으로 오는 비행시간은 직선항로라 그런지 2시간 조금 더 걸렸다.
    공항버스를 타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아!
    고소공포증!
    비행기를 탔는데, 그런데 살았다!
    역시 한국이 최고다.
    사랑해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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