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하늘 사다리
    나의 이야기(창작~수필·칼럼) 2016. 7. 18. 22:01
    
    
        하늘 사다리 소리새/박종흔 내 고향은 충북 청주 근교의 시골이다. 시골 초등학교의 운동회는 대부분 추석이 지나고 바로 열린다. 운동회가 열리는 날은 운동장에 만국기가 펄럭이고 잔칫날 같았다 그 시절 시골은 배고픔에 익숙했지만, 그날만큼은 명절 다음날이라 여러 가지 먹을 게 풍부했으니 어찌 아니 좋으랴. 소풍과 운동회가 열리기 전날은 졸고 깨기를 반복하며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때 어린이들의 꿈은 3등 안에 들어서 상품을 타는 것이다. 뭐~ 상품이라야 노트와 연필이 고작이지만. 어릴 때부터 나는 달리기를 잘하는 축에 들었다. 다만 끝 힘이 없는 게 문제였지만. 운동회서 달리기를 1등 하는 게 내 꿈이었는데 그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출발 총성과 함께 열심히 달려 테이프가 보이는 지점에 이르면 얼굴이 검고 작았던 그 친구가 총알처럼 달려가 1등으로 골인한다. 아! 나는 그 아이와 키가 비슷해서 항상 같은 줄에 서니 매번 2등만 했다. 그래도 우리는 사이가 좋았다. 그때 시골은 몇 집 빼고는 대부분 가난했다. 흰쌀밥은 일 년에 서너 번 정도 먹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잡곡밥이나 보리밥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친구는 옹기 굽는 동네에 살아서 어머니가 손수레에 옹기를 싣고 여러 동네를 누비며 옹기를 팔고 살았으니 그 고생이 무척 심했을 것이다. 소풍날엔 내 김밥도 나눠 먹고 약간 맛이 가서, 팥 냄새가 시큼한 갈색의 얼음과자도 같이 먹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어른이 돼서 그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그 얘기를 하면서 무척 고마웠다고 하더란다. 힘든 환경에서도 열심히 노력해서 대학까지 나오고 수도권에서 주유소를 2개나 운영하니 고생 끝에 성공한 사례다. 우리 초등동창회는 시골 고향에서 모교 동창회를 하지만 지리적 여건 때문에 수도권 동창들은 별도로 분기마다 서울서 한다. 총 동문 운동회는 같이 하고, 여건이 되는 친구들은 연말 송년회를 양쪽을 오가며 한다. 저번 수도권 모임은 속초 근처의 그 친구 별장에서 1박으로 진행했다. 소나무가 울창하고 공기가 맑아서 요양하기 적당한 장소로 보였다. 고향의 동창회장과 총무도 먼 거리를 와주었고 수도권의 많은 친구가 함께 했다. 나는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 차를 타고 조금 늦게 집결지에 도착했는데 많은 차가 와있어서 주차할 공간을 찾느라 힘들었다. 차에서 내리자 친구가 하는 말. “ 야! 내 그랜저가 왜 이렇게 작아 보이지? 에구~ 마치 티코 같아.” 우리는 킥킥대며 즐비하게 주차된 대형차 틈에 “그랜저~티코”를 끼워 넣었다. 다들 모이자 질리지도 않는지 또 그 수다가 시작된다. 누구는 몇 학년 때 우리 반 했다. 40년 세월이 흘렀지만, 친구들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자신의 반과 반 친구들을 다 기억하는 것 같다. 나는 기억 못 하는데 친구들은 머리가 참 좋은가보다. 우등상 받은 애는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그런데 그 친구가 떠났다. 구름에 얹은 하늘 사다리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서 밤하늘의 별이 되었다. 몇 년간 투병을 이어갔지만 그렇게 급작스레 떠날 줄은 몰랐다. 요양병원으로 옮긴 다음 날 급하게 친구들을 소집해서 문병을 하러 갔다. 3명씩 조를 짜서 면회하는데 먼저 다녀온 친구들이 눈물을 글썽인다. 시각 청각 모든 기능이 상실된 것 같다고 듣지도 못하는 것 같고 친구들도 몰라본다고, 마지막 조로 병실에 들어서니 큰아들과 예비 며느리가 안내한다. 침대에 기댄 채 허공을 응시한 눈은 초점이 없고 무척 야윈 친구. 숨쉬기도 힘든 듯 가쁜 숨을 몰아쉰다. 친구 이름을 부르며 힘내라는 말을 해보지만 들리지 않는 것 같다. 돌아서 나오려고 하다가 친구 곁으로 가서 퉁퉁 부은 친구 손을 잡고 조용히 얘기했다. “친구! 무척 힘들지? 그래도 힘내자. 친구를 위해 여러 친구가 함께 왔잖아. 내가 친구를 위해 기도해 줄게. 같이 기도하자.” 반응 없는 친구 손을 꼭 잡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반응이 없던 친구의 손가락 하나가 몇 번 꿈쩍인다. 있는 힘을 다해 손가락으로 답하는 느낌이었다. 나도 눈물이 절로 나는 기도를 드렸다. 같이 있던 친구들도 눈이 벌겋다. 원래 나는 교회서 뺀질이로 소문났다. 그렇지만 대학 때부터 교회에 다녔으니 연식은 많이 됐다. 그런데 일주일 전부터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새벽기도를 다닌다. 아마 이 친구를 위해 기도할 용기를 주신 건지도 모른다. 새벽예배를 나가지 않았으면 사람들 앞에서 기도하긴 힘들었겠지. 그렇게 문병 다녀온 다음 날 그 친구가 떠났다는 부고를 받았다. 문상에서 만난 친구들은 그 얘기를 했다. “그 친구가 친구들을 보고 떠나려고 힘들게 버틴 것 같다고. 친구들을 봤으니 편하게 갔을 거라고.” 문상하고 나오며 친구 큰아들에게 얘기했다. “아빠를 위해 추모시를 지었는데 나중에 보내줄 테니 유용하게 쓰라고.” 그리고 며칠 후 카톡으로 추모시를 보내주었다. ~~~~~~~~~~~~~~~~~~~~~~~~~~~~~~~~~~~~~~~~~~~~~~~~~~~~~~~~~~ 안식 소리새/박종흔 노을 지고, 어둠 내리면 더욱 그리운 사람이여! 정답던 시절 옛 생각이 나거든 살며시 미소를 지어주오 별빛 내리는 밤 또 하나의 추억으로 남은 마지막 눈 맞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차마 놓지 못한 인연의 굴레 한 조각 미련마저 흐르는 강물에 띄우고 홀로 떠나는 여행길 친구여! 다시 만날 그날까지 편히 안식하소서.
    ">

    '나의 이야기(창작~수필·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합실 할머니  (0) 2017.09.12
    할머니와 손수레  (0) 2016.07.20
    방아쇠 수지  (0) 2015.10.19
    얼룩 고양이  (0) 2015.10.14
    소녀와 빨간 자전거  (0) 2015.10.02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