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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아쇠 수지
    나의 이야기(창작~수필·칼럼) 2015. 10. 19. 21:18
        방아쇠 수지 소리새/박종흔 작년 가을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올해도 추석은 빠르게 찾아왔다. 항상 그러하듯 이번에도 명절 열차표를 예매하지 못했다. 예매일 6시에 번개처럼 자판을 눌러서 대기 번호를 받았지만 앞에 1만 명 이상이 있으니 열차표 구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정시에 자판을 눌렀는데 왜 내 앞에는 항상 많은 사람이 있을까? 컴퓨터가 구형이라 그런가? 혼잣말하며 20여 분 기다리니 내 차례가 왔다. 추석 전날의 하행선 차표 2장과 추석 다음 날 상행선 2장을 입력하고 목적지와 시간을 눌렀지만 모두 팔린 후였다. 이제 틈만 나면 코레일을 접속해서 반환 나오는 열차표를 잡아야 한다. 예매일이 끝나고 보름 정도 지나서 운 좋게 왕복 차표를 잡았지만 좌석이 붙은 게 아니고 열차 칸도 다르다. 고향은 열차로 1시간 정도 걸리지만 많은 사람 틈에 끼어 서서 가는 건 이제 힘든 나이가 되었다. 추석 전날 고향으로 가기 위해 아내와 역으로 나갔다. 요즘 경기가 나쁘지만 역 광장은 고향을 찾는 추석 귀성객으로 무척 붐볐다. 열차가 들어오자 아내 칸으로 가서 자리를 잡아주고 내 칸으로 가는데 통로에 사람들이 많아서 시간이 걸렸다. 겨우 비어있는 내 좌석을 찾았지만, 선뜻 앉지 못했다. 좌석 옆에 3살 정도의 공주님이 부모님 손을 잡고 서 있는 게 안쓰러워 꼬마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싶었지만, 선반엔 빈자리도 없고 내 배낭엔 짐도 가득해서 들고 있을 수도 없어서 엉거주춤 서 있는데 마침 꼬마 엄마가 선반의 가방을 내린다. “제 배낭을 선반에 놓으면 안 될까요?” 하고 물으니 선뜻 그렇게 하란다. 배낭을 올려놓고 꼬마에게 앉으라고 했더니 부모는 극구 사양한다. 대전까지 가면 된다는 걸 재차 권해서 엄마와 꼬마를 앉게 했다. 아직은 체력이 있으니 운동한다고 생각하니 맘이 편했다.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와서 배낭을 메는데 꼬마 아빠가 고맙다고 하면서 언제 필요하시면 연락하라며 명함을 건네기에 나도 명함을 준 후 내렸다. 내려서 명함을 보니 서울 강남의 정형외과 전문의였다. 꼬마에게 자리 양보한 건 내 양심이 시켜서 따른 것뿐인데 “글쎄, 내가 도움받을 일이 있을까?” 피식 웃으며 고향 역의 공기를 맘껏 들이켰다. 명절을 보내고 집에 도착해서 아내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당연히 시선이 곱지 않음을 느꼈다. “명절 때 누가 자리를 양보하냐고” 말은 안 했지만 아내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변명하며 다시 명함을 확인하는데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게 있었다. 정형외과 전문의로만 봤는데 다시 보니 원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강남에서 알아주는 정형외과 원장님이었다. 얼마 전에 우측 엄지와 검지 사이의 힘줄이 무척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병명이 “방아쇠 수지”라고 하면서 수술 권유를 받았지만, 차일피일 미뤘다. 명함의 휴대폰으로 전화해서 명절 고향에 갈 때 만났던 사람이라고 하며 “방아쇠 수지”의 수술 권유를 받았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고 물어봤더니 수술은 마지막 시기에 하는 거라며, 먼저 물리치료를 하는 게 순서라고 자세하게 알려주신다. 꼬마에게 자리 하나 양보하고 좋은 상담을 한 것이다. 보름 정도 혼자 마사지를 했더니 지금은 통증 없이 정상으로 되었다. 참으로 고운 인연이었다. 덕분에 중년에 온 “방아쇠 수지”를 해결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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