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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녀와 빨간 자전거
    나의 이야기(창작~수필·칼럼) 2015. 10. 2. 14:42
    
    

    소녀와 빨간 자전거 소리새/박종흔 뙤약볕 내리쬐는 여름의 주말 산행. 주말엔 늘 그러하듯 중요한 약속이 없으면 배낭을 둘러메고 산행을 한다. 보통 산악회 참석은 10명 정도가 모이지만 여름엔 참석자가 절반 정도이다. 습도는 높고 무더운 날씨가 지루하게 이어지는 여름에는 쉼 없이 부채질하며 땀을 닦아도 한없이 흘러내린다. 중년의 산행은 자신과 싸움이다. 먹는 대로 복부에 살이 찌니 건강을 위해 산에 오르는 것이다. 가다 쉬기를 반복하며 전진하면 정상이 보인다. 작은 산이지만 정상에는 태극기가 꽂혀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선물로 받은 대한민국이다. 정상에서 사진 몇 장 찍고 조금 내려오다 간식을 먹는다. 번데기와 돼지껍질, 구운 달걀과 과일, 김밥과 맥주와 막걸리를 풀어놓고 둘러앉는다. 어쩌면 간식 먹는 재미로 산행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산행하는 사람들을 보면 중장년들이 대부분이다. 어쩌다 젊은이들을 보면 새롭게 보이기까지 하는 것은 힘든 운동보다 인터넷이나 편한 삶을 즐기는 것 같기 때문이다. 저번엔 대학생들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극기 훈련을 하는 듯 헉헉거리며 줄지어 가는데 그중에 여학생 두 명이 울상이다. 생수도 없이 산에 온 것 같기에 얼음물을 주니 얼굴이 환해지며 감사 인사를 한다. 산에 오르면 배울 것이 많다. 하산하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다음 산행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저녁이 되어가도 아직 더운 날씨이다. 그런데 집으로 가는 길에 이상한 광경을 유심히 보았다. 골목에서 앙증스러운 빨간 자전거 잡고 어쩔 줄 모르는 소녀. 나이는 아마 유치원에 다니는 것으로 보였다. 자전거 뒷바퀴에 헌 비닐 뭉치가 가득 감겨있는 자전거. 끌고 가려고 힘을 쓰지만, 자전거는 꼼짝하지 않는다. 가던 길 멈추고 소녀에게 물었다. “자전거에 걸린 비닐 아저씨가 빼줄까?” 그러니 얼굴이 환해지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요즘은 귀엽다고 머리나 얼굴을 만져도 죄가 되는 시대니 어른들이 여간 조심하는 게 아니다. 손으로 비닐을 잡아떼려 했지만 얼마나 많은 비닐이 말리고 엉켰는지 손가락만 아프고 뗄 수가 없다. 과일 깎을 때 쓰는 작은 과도를 꺼내서 조각내니 겨우 된다. 풀어헤친 폐비닐이 큰 뭉치를 이룬다. “이 비닐은 원래 있던 곳에 두고 집에 가거라.” 말을 마치고 몇 발짝 걷다 돌아보니 소녀는 가지 않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소녀의 마음을 읽고, 나도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 말하지 않아도 네 맘 안다. 너도 이웃을 도우며 살아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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