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시인
소리새/박종흔
즐거운 명절 추석을 보내고
연휴가 이어져 가까운 산행을 하였다.
가을 산길을 홀로 걸으며
오랜만에 수필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쓴 수필은 75개.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시인으로선 다작 아닌가?
수필의 매력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나는 시인인지라 주로 시를 쓴다.
가끔 아내가 넌지시
내 수필이 좋다는 얘기를 하곤 하지만
난 정말로 시가 좋다.
시인 등단 후
5년 동안 쓴 시가 거의 1,500개가 되니
시에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다작하다 보니
문인들과 거리감이 생기기도 한다.
무슨 시를 붕어빵 찍어내듯
매일 쓰느냐는 핀잔도 들린다.
하긴 내가 봐도 그런데.
어느 시인은 시 하나를 쓰기 위해서
뼈를 깎는 고통으로
몇 날 며칠을 뜬눈으로 지새운다고.
그리고 그것을 퇴고하고
숙성시키는데 수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나 역시 그런 소릴 많이 듣긴 들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쓰려고 해도
그게 안 되니 어쩌란 말인가?
하루라도 시를 쓰지 않고선
잠을 이룰 수가 없는데.
모든 사물이 시의 소재와 주제로 보이고
호흡하는 순간마저 시와 놀고 싶은데.
오늘 산행을 하면서 시를 또 하나 건졌다.
길을 걷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
휴대전화 메모장에 그 느낌을 기록한다.
집에 와서
그 장면을 떠올리며 자판을 두들기면
또 하나의 시가 나온다.
나는 시를 잘 쓰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가슴이 시키는 대로 쓴다.
시를 잘 쓰려고 하다 보면
문장은 화려한 듯하나
생동감도 없고 왠지 낯설어 보인다.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은 말한다.
“글의 문장이 화려하지도
아름다운 시어도 별로 없지만
그래도 글이 살아있다고.”
한마디로 글이 촌스럽다는 뜻이리라.
그래도 괜찮다.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내 글을 읽고 마음이 동한다면
난 충분히 행복한 것을.
그래도 가끔은
수필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글이 좋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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