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에게 쓰는 편지
소리새/박종흔
비둘기야 안녕?
오늘은 너희들에게 편지를 쓴다.
내가 너희들과 인연을 맺은 지도 십여 년이 되는구나.
그동안 제대로 먹이를 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란다.
그동안 찬밥을 모았다 물에 헹궈서 주거나
집에 줄 만한 잡곡이 없으면
가게에서 값싼 보리쌀을 사다가 주었지.
올해 추석 명절도 끼고 해서 열흘 만에
장안공원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주었지.
너무 오랜만이라 무척 미안했단다.
그동안 너무 배가 곯았을 것 같아서
오늘은 현미 800그램짜리 두 개를 샀단다.
오후에 산행 가는 길에 김밥을 사가려 했는데
아내가 송편 6개와 사과 반쪽, 오이 하나를 싸줬어.
그래서 김밥 살 돈으로 보리쌀 대신 별식으로 쌀을 산 거야.
혹시나 너희들이 먹이를 구하러
다른 데로 나갔을까 걱정하며 공원에 도착하니
백여 마리가 넘는 비둘기들이 날 알아보고 몰려들더구나.
난 무척 기뻤어.
반가운 마음에 먹이를 길가에 길게 뿌려주었지.
그런데 너희들이 얼마나 굶주렸는지
정말 개미 떼처럼 먹이에 달라붙었어.
그럴 것 같아서 공원 가장자리에 길게 먹이를 뿌렸는데
거기는 아랑곳없이 다른 친구들이 먹이를 먹는데
동료 등 위로 몸을 포개어 머리를 집어넣더구나.
그런데도 너희들은 부리로 쪼거나 상대를 해치지 않더구나.
그래서 너희들이 좋은 거란다.
마음이 무척 아팠어.
가슴에 이슬이 맺힐 것 같았단다.
좀 더 많이 가져올 걸 하고 후회했단다.
그래도 요기는 했지?
오늘 밤은 단잠을 자며 행복한 꿈도 꾸겠구나.
다음에 우리가 만나면 먹이를 많이 먹는 꿈을 꾸겠지.
배고픔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마찬가진 걸.
다음엔 더 많이 줄게.
이렇게 너희들에게 편지를 써서 행복하단다.
모두 건강하게 오래 살렴.
모든 생명은 숭고한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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