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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가라
    나의 이야기(창작~수필·칼럼) 2009. 1. 5.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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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가라

                                               소리새/박종흔

     

     

     

     

    이제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이다.

    마지막 덩그러니 남아있는 한 장의 달력.

    벽에 달라붙어 일 년 동안 참고 인내하며 마지막 한 장의 달력을 내어놓는다.

     

    새삼 세월의 빠름을 논하지 않더라도

    이미 정석이 되어버린 세월의 흐름처럼

    주변의 변화에도 감각이 무디어진 것도 이미 오래전이다.

    그래도 낡고 퇴색된 추억의 앨범을 열어본다.

     

    얼마 전 은행잎들을 주워 책갈피에 넣어 두었다.

    이미 바짝 말라서 예쁘게 모양이 잡혀있는 은행잎.

     

    가지에 달려 있을 때와 길바닥에 떨어져 있을 때

    누군가의 손에 단아한 모습으로 변해 있을 때

    여자의 변신처럼 변신술이 이채롭기만 하다.

     

    가을은 중년의 계절.

    특히 중년 남자의 계절은 왜 가을일까?

    예전엔 왜 그런지 몰랐지만, 이번 가을에 그 이유를 대충 짐작했다면

    중년 남자들에게 욕먹을 짓인지.

     

    늦가을 비가 내리는 밤거리.

    예전 같으면 시인이라도 된 듯 비를 맞았겠지만

    실용주의 중년이기에 감기 걸리기 싫어 우산을 쓰고 걸었다.

    아주 현명한 판단력을 동원한 듯 우쭐한 마음으로.

     

    가뭄이 길었는데 모처럼 가을에 비가 내렸다.

    다음 날 아침 무수한 은행잎들이 인도며 차도에 깔렸다.

     

    은행의 특유한 인분 냄새와 비슷한 냄새 때문에 시민들은 늦가을의 곤욕을 치러야 한다.

    또한 낙엽 때문에 길거리는 항상 지저분하다.

    청소차를 동원하지만 매일 떨어지는 낙엽을 어찌할 수 없다.

     

    아!

    본론은 그게 아니라 중년의 계절이라는 가을 얘기다.

    비가 내린 늦가을의 길거리 풍경은 그러한데.

     

    요는~ 은행잎 같은 마른 낙엽 이야기다.

    인도에 달라붙어 있는 낙엽을 발로 툭툭 차서 차도로 보내려 하지만

    바닥에 착 달라붙어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다른 것을 시도해 보았지만, 답은 역시 같음이다.

     

    비에 젖은 낙엽!

    어쩌면 그리 길바닥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지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 낙엽들과 우리네 중년 남자들의 얼굴이 교차하는지.

    비에 젖어 길바닥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낙엽!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이제는 젖은 낙엽 때문에 가을도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럼 무슨 계절에 아양을 떨어야 하나?

    불쌍한 중년 남자들은 갈 곳이 어디란 말인가?

     

    그래, 차라리 빨리 달력을 떼자.

    그냥 자수해서 항복하고 광명을 찾자.

    그러다 보면 비에 젖은 낙엽 신세는 면하겠지.

     

    아~ 소리만 나오는 가을이 갔다.

    그래 잘 갔다.

    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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