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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이야기(창작~수필·칼럼) 2009. 3. 30. 06:48


      
        여행 소리새/박종흔 바다를 향한 열차의 전진은 규칙적인 파열음을 내며 이어지고 피곤했던 곤한 몸은 어느새 꿈나라로 빠져든다. 비몽사몽 한참을 조는 듯 자다가, 어느 역인가 덜컹거리며 정차한 간이역. 열린 문 사이로 봄의 흙냄새가 밀려와 잠을 깬다. 차창으로 밖을 보니 도시와는 느낌이 전혀 다른 시골 풍경에 굳어진 마음이 술렁인다. 길게 늘어선 하얀 비닐하우스들이 줄다리기하고 낮은 동산들이 어깨를 맞대며 아직 덜 익은 봄의 수채화를 그린다. 마음으로 스케치한 그림에 진홍색 물감으로 채색하고 어지럽게 변형하며 마무리한다. 야트막한 농가들 사이 한가운데 우뚝 선 아파트 무리가 눈에 거슬린다. 있을 곳에 있지 못하는 슬픔이 한적한 시골 풍경을 훼손한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열차는 부지런히 제 갈 길을 재촉한다. 잠시 후 펼쳐질 넓은 바다와 끼룩거리는 하얀 갈매기를 상상하며 마음을 추슬러 본다. 얼마간의 과도기를 거치며 내 인생은 반환점을 돌아 멀찌감치 달려와 이제는 인생의 아픔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아쉬워, 몇 번이나 걸려오는 친구의 전화를 부재중으로 처리한다. 한참 후 미안한 마음에 도착지에서 보자는 간단한 문자만 덜렁 우체통에 한 통 넣어두고 알듯 모를 듯 묘한 실소를 날리는 나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바라본다. 친구에 대한 미안한 마음보다는 내 시간의 우선순위가 큰 비중을 차지하나 보다. 덜컹거리는 기차의 속도감이 현저히 떨어진다. 시골 모든 역에 정차하는 장항선의 새마을호 열차에 슬그머니 화가 치민다. 눈 앞에 펼쳐지는 시골 풍경은 아직 덜 익은 봄의 모습이다. 산의 나무들도 아직은 푸른 옷으로 갈아입지 못하고 작은 농수로에는 적은 물길이 그나마 명맥을 이어간다. 논밭의 거친 행진이 이어지다 간혹 보이는 푸른 보리밭이 신비롭다. 예전에는 푸른 보리밭은 아주 흔했는데 이제는 가끔 볼거리를 제공할 뿐 요즘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인생의 간이역처럼 생긴 보리밭을 눈으로 보고 마음에 심었으니 오늘의 여행은 대박이다. 잠시 후 감칠맛 나는 싱싱한 회와 넓은 바다.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더욱 좋다. 꽃이 보인다. 한적하게 논 가운데 자리한 농가에 커다란 벚꽃이 활짝 피었다. 대조적으로 가끔 보이는 볼썽사나운 폐농가는 버려짐의 아픔을 알게 하고 소망의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고요한 호수를 지나자 논의 색이 더욱 푸르게 짙어지는 것을 보니 더 남쪽으로 달려간 것 같다. 지난해 쌀을 수확한 벼 포기 자리마다 파란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잠시 후에는 갈아질 것도 모르는 채 제각기 푸른 채색을 추가한다. 그러한 것은 바쁘게 사는 우리들도 비슷하다. 사람의 내일 일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게 인생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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