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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이야기(창작~수필·칼럼) 2009. 3. 23. 13:50
      
    
    

     

     

     

    속마음은

                                 소리새/박종흔

     

     

     

    정육점에 부탁하여 몇 번에 걸쳐서 얻은 돼지 껍질과 지방을

    냉동실에서 꺼내 해동시키고 커다란 그릇에 끓이자

    집안은 비릿한 냄새로 진동한다.

     

    집사람에게 욕먹을 각오를 하고 시작한 일이니

    빨리 작업을 끝내고 환기를 시켜야 한다.

     

    두 번에 걸쳐 돼지 지방을 끓인 후 찬물로 열기를 식히고

    강아지들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칼집을 낸다.

    돼지 지방이 손에 닿으니 미끄럽기도 하고 속이 느글거리기도 한다.

     

    아무리 동물이지만, 간을 맞추느라 굵은 소금도 한 움큼 넣었는데

    제대로 간이 맞는지 모르겠다.

     

    교회 앞의 간이 축사에는 40마리 정도의 강아지들이 있으니

    한 마리당 몇 첨씩 고기 맛을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지금 하는 일이 역겨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좋다.

     

    자정이 넘어 학원에서 귀가하는 애를 데려오고

    설레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 소풍 가기 전날 들뜬 마음에 히죽거리며 잠을 설치다

    눈을 붙이려 양을 헤아리는 목동이 된 적도 있다.

     

    옛날처럼 오랜만에 양치기 소년이 되어본다.

    양 하나, 양 둘, 양 셋, 양 넷~~~

    이젠 숫자의 개념도 서지 않는 듯 배시시 웃어본다.

     

    새벽 네 시 반, 자명종이 울리자 소리 버튼을 누르고 양치를 한 후

    잠이 덜 깬 반쯤 감긴 눈으로 대충 머리를 빗고

    밖에 보관했던 돼지 지방 손질한 봉투를 들고 새벽길을 나선다.

     

    요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무척 부지런해졌다.

    삼 주 정도 계속 네 시 반에 일어난다.

     

    양심에 걸리는 게 많지만, 교회로 향한다.

    교인들이 열심히 하는 새벽기도에 나가는 중이다.

    그렇다고 믿음이 좋아서 나가는 것은 아니다.

    좀 더 진보적인 생각을 하며, 쐬는 새벽 공기도 좋아서이다.

     

    덤으로 얻는 즐거움 하나.

    내 차의 엔진 소리도 멀리서도 알아채는 강아지들.

    주차한 후 걸어가는 내 발소리에 일제히 괴성을 지르는 강아지들.

     

    빈손으로 가는 날은

    미안한 마음에 뒤통수가 따가워 발걸음을 재촉하기도 한다.

     

    강아지들의 합창을 뒤로하고

    잠시 후를 기약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한 시간 후, 먼동이 트기 시작하자 대충 사물 구별이 된다.

    주위를 분간할 수 있게 되자 맨 처음 부엌문을 열었다.

     

    아직 어둠 속의 찬 공간에서 보이는 흰색의 작은 강아지 한 마리.

    형제를 잃고 어미마저 떠나간 차가운 철망의 강아지 우리에

    솜털이 유난히도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덩그러니 들어있다.

     

    두 달 조금 넘은 강아지는 이제 고기 맛을 아는지

    벌써 냄새를 맡고 신음을 내며 얼른 먹을 것을 달라고 보챈다.

     

    가져온 고기 중 제일 크고 칼집을 낸 것을 우리 안으로 밀어 넣는다.

    배가 많이 고팠었나 보다.

    먹이를 먹는 그 순간은 먼저 떠나버린 형제도 어미도 안중에도 없는 듯

    숨소리도 거칠게 대충 씹어서 삼켜 버린다.

     

    그러는 중에도 다른 수십 마리의 강아지들이 난리이다.

    대충 솜털 강아지에게 먹이를 주고는 다른 강아지들에게 골고루 던져준다.

    똑같이 나눠 준다고 하지만 머리가 좋은 것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남의 몫도 제 것처럼 으르렁거리며 빼앗아 먹는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양심 불량은 어디나 존재하나 보다.

     

    간식 배급을 끝내고 손을 비비니 돼지 지방이 두텁게 묻어서

    휴지로 닦아내려 해도 잘 지워지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약간 비웃는 듯 미소를 흘리며 보는 사람들.

     

    괜찮다.

    놀려도 좋고 모른척해도 좋다.

     

    내 좋아서 하는 일은

    누가 뭐라고 하든 개의치 않는 것이 내 성격이다.

     

    다시 부엌문을 열고 강아지 우리를 살펴보다

    마지막 남은 살코기가 붙은 간식을 우리 안으로 밀어 넣었다.

     

    먹이를 순식간에 먹어버린 하얀 솜털 강아지는

    빛나는 눈으로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고맙다는 표현이다.

    그리고 더 달라는 눈빛이다.

     

    저것을 데려다 길러주면 좋으련만.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나에게도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있다.

     

    칠 년 동안 기르는 갈색의 숫 코카 때문이다.

    애교는 있지만, 화나면 성격이 포악하고 안하무인이다.

    지가 대장이고, 성질 건드리면 주인이고 뭐고 없이 물어 버린다.

     

    식구들이 모두 물렸지만, 아직도 기르는 중이다.

    주인 무는 개는 기르는 것이 아니라고 주위에서 말들을 하지만

    모진 정을 떼어내기가 쉽지 않다.

     

    예뻐서 기르는 것이 아니라 방출하면 그놈은 사흘을 버티지 못한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버림을 받으면 얼마나 비참해지는데.

     

    그 비참함과 배고픔을 알기에

    힘이 닿는 한 이렇게 자청해서 조롱받는 일을 한다.

     

    우리 코카는, 사료도 운전하며 무릎 위에서 손으로 줘야만 먹는다.

    한 손으로 운전하고, 다른 손으로 사료를 먹인다.

    덩치도 커서 15kg이나 나간다.^^

     

    물론 고기나 우유는 그릇에 있는 것도 잘 먹지만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릇의 사료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물론 교육을 잘못시킨 주인 책임이다.

     

    아무튼 칠 년짜리 코카 때문에

    어미 잃은 불쌍한 솜털 강아지를 받아줄 수 없다.

    강아지를 데려오자마자 당장 한입에 덥석 물 테니.

    코카는 지가 사람인 줄 알고 네 다리를 활짝 벌리고 사람처럼 잠을 잔다.

    여기저기 방안 아무 데나 다리 들고 오줌 싸고

    제 방귀 소리에 놀라서 온 방을 뛰어다니는 코카.

     

    거울 속의 제 모습만 인정할 뿐, 다른 강아지들은 모두가 적이다.

    그러니 일곱 살 먹는 동안 장가 한 번도 못 갔다.

     

    속마음은 당장 솜털 강아지와

    우리 집 말썽꾸러기 코카를 트레이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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