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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회개는 은총의 역사이며 하나님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설교 2010. 8. 4. 07:45

     

     

     
     
     
     
    회개는 은총의 역사이며 하나님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예수님: 회개와 총체 비전

    세례자 요한: 회개

    메타노이아는 사고방식, 관점, 마음의 바꿈을 뜻한다.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태도를 바꾸라고 요구한다.(막 1:4-5)
    우리는 우리와 다른 이질적인 것을 용납하기가 어렵다.

    요한이 말하는 회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행위이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때에 당신의 방법대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도록 맡겨두라는 뜻이다.
    “너희는 멈추고, 내가 야훼인 줄 알아라.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않다.  나의 길은 너희 길과 같지 않다.”(시 46:10, 사 55:8)

    회개는 내적 실재이며 마음의 변화이며 사물을 보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열두 사도: 회개에로의 도전

    예수님이 12 제자를 가르친 3년은 그 분의 생애 중 가장 위대한 순간이었다.

    예수님의 인격과 가르침 속에서 예수님의 총체적인 비전을 깨닫게 되었다.

    예수님은 “ ... 한 사람은 행복하다.” 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행복하다는 뜻은 지복을 말하며

    참된 행복과 충만한 삶을 가르치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칙이다.

    그것은 철저한 신앙고백을 요구한다.

    “나를 믿는 이들은 행복하다." (눅 7:23)
    12제자들이 지녔던 많은 낡은 태도는 이 새로운 지복관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 (눅 6:27-35)
    예수님이 진실로 요구하신 것은 낡은 비전을 버리고 새로운 비전을 취하라는 요구였다.
    굳은 신앙의 문제이며 깊은 신뢰의 문제이다.


    사도들은 행복하게 해 줄 그 무엇을 나름대로 상상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물질적인 풍요 즉 고기가 가득 찬 배, 배부름과
    부유함을 꿈꾸었다. 안정과 행복을 원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실로 이루어지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회개였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매력적인 인품에 끌려
    배와 그물과 생업까지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들 자신의 꿈, 계획, 민첩하게 쌓아올린 행복의 원칙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


    제자들은 원수를 사랑하고, 물질적 소유를 포기하고 원치 않는
    길을 함께 걸어가고 다른 쪽 뺨마저 내어주라고 하는 계명이
    그들의 행복의 원칙 안에 없었다.

    예수님은 완전히 다른 새로운 가치, 즉 총체 비전을 제시하였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 나의 왕국을 지배하는 권위는 오직 봉사뿐이다.
    사랑하려는 마음만이 유일하게 받아들여진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실제적인 힘은 사랑의 능력뿐이다.
    나와 같이 너희들도 서로 사랑하고 봉사하도록 부름 받았다. 고 가르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가르침을 알아듣기 힘들었다.

    예수님의 죽음: 아무도 회개하지 않았다.

    사도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방어적인 옛 관점이 남아 있었다. 


    부활과 반성

     

    예수님은 부활한 날 아침 사도들에게 나타나 죽음을 이긴 승리를 보여 주셨다.
    예수님은 친절하고 인내롭게 그들을 이해하려 하신다.

    “샬롬! 그대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예수님의 이런 인사에 모두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던 부활에 대한 생각을 모두 잊고 있었다.
    예수님은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리기 위해 직접 생선을 먹어 보이신다.
    자신의 몸을 손으로 만져 보게 하신다. (눅 24:36-43)

    프랑스 작가 레옹 블로아는 “ 실로 행복한 이들은 성인들뿐이다.
    우리 모두는 성인이 아니기에 슬플 수밖에 없다.”

     

    성인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그리스도의 비전을 자신들의 것으로 완성시켜 나간 이들이다.

    그들은 인간의 마음으로 헤아릴 수 없으며

    지상에서 얻을 수 없는 예수님이 남겨준 평화를 체험한다.
    그들은 자기중심적, 자기 방어적, 자기 추구적인 관점의 낡은 사슬을 끊어 버린다.
    그들은 예수님이 우리 모두에게 제시한 “충만한 삶”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예수와 그 때 그 사람들: 안전지대

    예수님은 진정한 통치자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 즉 왜곡된 옛 태도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요 8:36) 


    안전지대는 강렬한 소유욕을 갖고 있다.

    오직 성인들만이 안전 지대로부터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영혼의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비전으로 인해 자유로워지기를 원한다면
    먼저 기존의 마음 자세와 사고방식을 깨고 나오려는 진실된 순종이 있어야 한다.

    우리 삶의 주인을 나 자신으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옮긴다는 것은 진정 어려운 일이다.
    우리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안전지대를 떠나
    미지의 곳을 향해 떠나기 위해서 깊은 신앙이 필요하다.
    우리를 불러 도전하게 하시는 그 분의 은총의 목소리는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을 몰아냈다.
    “ 나를 따르라. 그러면 너희들은 어둠 속을 걷지 않을 것이다. ”(요 8:12)



    회개: 우리 안에 일어나는 은총의 역사


    회개의 가장 본질적인 의미는 신앙의 체험이며 은총의 역사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당신을 믿는 이를 선택할 수 있으며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이 이런 비전을 수용할 수 있다.

    신앙은 지성보다는 개방적이고 용감한 마음에서 생긴다.
    신앙은 모든 것을 예수님께 거는 일종의 도박과 같다. 


     회개는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할 때에 비로소 생겨나게 된다.
    그것은 지성의 문제가 아니라 은총을 체험하는 일이다.

    (마 16:17, 요 6:44, 엡 2:8-9)


    회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참된 이해


    신앙의 회개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스페인의 사제 후안 아리아스는 <내가 믿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책의 저자이다.

    만약 물질을 비난하고... 고통을 사랑하고... 인간적인  기쁨에
    물을 끼얹고... 항상 백점 짜리 인생을 원하고... 인간의 축제를
    용납하지 않으며... 세상 만물을 따뜻하게 비추는 태양같은
    관대함 조차 없는 하나님이라면 나는 믿지 않겠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결코 믿지 않을 것이다.“ 

    복음 전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이 진실하게 전달 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정 기쁘고 사랑스러운
    것으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신앙의 회개도 새로운 탄생도 일어날 수 없다. (고후 5:17-19)

    우리 자신의 계획, 꿈, 행복을 포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간을 위해 하늘의 별과 산과 바다를
    만들어 주신 것처럼 근본적으로 하나님 사랑의 행위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어미는 혹시 잊을지 몰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사 49:15)
    나는 한결같은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여...(렘 31:3)
    너는 나의 두 손 바닥에 새겨져 있고...(사 49:16)
    너희를 건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것이다. (슥 2:8)

    하나님의 복음을 듣지 못하는 우리의 무지

    하나님의 조건없는 사랑의 메시지를 듣지 못하는 것은

    지나치게 우리 자신의 잘못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수하는 인간을 받아들이신다.

    실수는 인간의 조건이다.

    신앙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많은 것을 약속하고 있다.
     
    왜곡된 신앙과 비전이 맺는 결실은

    평화와 기쁨이 아니라 분노와 좌절 뿐이다.

    어거스틴은 “우리는 모두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할렐루야 이어야 한다.”고
    내가 전혀 할렐루야의 기쁜 마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되게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의 비전이며 나의 닫힌 마음이다.



     

    '존 포엘, 그리스도인의 비전'

     

     

    예향원 (www.yehyangwon.net)

     

     

     

     

     

     

     

     

    출처 : 예향원
    글쓴이 : 예향원피정의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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